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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

유쾌하고도 싱그러운 에세이,『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

by 달리뷰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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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민음사 '쏜살문고', 카렐 차페크의 에세이도 역시 좋다!

민음사의 쏜살문고 시리즈는 판형이 작고, 두께도 대체로 얇은 편이다. 쟁쟁한 작가들의 이름에 가볍게 손에 들기 부담될 수도 있으나, 이런 외피 덕에 부담을 좀 내려놓게 된다. 거의 백 권 가까이 나온 것으로 아는데 사실 읽은 책은 서너 권 정도다. 점차 하나씩 읽어가야지. 이번에 읽은 건 카렐 차페크의 유쾌한 에세이,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이다.

 

카렐 차페크는 자신의 희곡에서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사람이다. 이제는 보통명사가 된 단어 '로봇'의 창시자인 셈이다. 작가에 대해서는 딱 이 정도만 알고 있었고, 저서를 읽는 건 처음이다. 작가 이름을 보다는 제목을 보고 책을 골랐다. 요즘 식물 기르는 일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라, 정원 가꾸는 사람의 매달은 어떻게 지나가는지 궁금했거든.

 

읽는 동안, 피식 대며 웃은 게 여러 번, 얼굴에 슥 미소가 피어오른 게 또 여러 번이었다. 정원과 식물과 흙을 너무 좋아해서, 신나서 방방대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글 곳곳에 배어있다. 과장된 표현도 귀엽게 보이고, 호들갑스러운 모습도 우습지만 사랑스럽다. 그러면서도 세밀한 관찰과 지적인 고찰이 또 빠지지 않는다. 역시 작가는 작가더라. 

카렐 차페크 산문집,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달, 표지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옴ㄹ김, 민음사 출판, 2021.12.10 초판 발행,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 (사진출처: 달리뷰)

 

매 계절, 매달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누리는 법, 정원사 되기!

한국인이라면 모두 다 아는 시, 김춘수의 '꽃'을 떠올려보라. 내가 네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너와 내가 서로에게 무언가 의미를 갖게 된다는 이 시는 카렐 차페크의 이 에세이와 여러모로 닿아 있다. 정원을 가꾸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날씨와 흙과 풀과 꽃이 정원사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의미다. 작가는 아예 '여러분이 세상과 맺는 관계가 딴판으로 달라져 있'을 거라고까지 말한다(p.7).

 

제목을 그대로 반영하듯, 책 속 소제목들은 '정원 가꾸는 사람의 1월', '정원 가꾸는 사람의 2월', 이런 식으로 12월까지 이어진다. 중간중간 '씨앗', '새순', '은총의 단비' 같은 소제목도 섞여 있긴 하다. 

 

나는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아니지만,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언젠가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길 소망하는 사람으로써, 가장 궁금하고 기대되는 달이 4월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읽은 후에도 그렇다. 물론 다른 달도 하나하나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서도. 

 

'여러분이 직접 웅크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포슬포슬한 흙을 쿡쿡 쑤셔 보세요. 손끝이 오동통하게 영근 연약한 새순에 닿을 테니 조심스레 숨을 참아야 합니다. 그 촉감은 차마 말로 형용할 길이 없어요. 키스라든가 또 이런저런 것들처럼, 인간의 언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 있지요.' (p.45) 

 

여름처럼 눈부시게 초록빛을 발하며 풍성하거나, 가을처럼 곱고도 성숙한 색채가 만연하는 건 아니겠지만, 연둣빛 새순이 부끄러움을 이기고 가지마다 올라오는 4월은 실로 아름다운 달일 것이다. 긴 겨울 이후 찾아오는 연한 빛깔이라 더 귀하고 소중하다. 얼고 굳었던 땅이 포슬포슬해지고 거기서부터 생명이 솟아오른다.

 

주위를 둘러봐도 느껴진다. 아직 4월이 열흘 남짓 남긴 했지만, 이제 오가는 길에 제법 산수유와 개나리, 철쭉과 진달래, 이름은 잘 모르겠는 새순들이 올라왔다.

 

11월을 말하는 글에서는 작가가 또 이런 귀여운 과장을 한다. '세상에는 좋은 직업이 많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중략..)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칭찬할 만한 직업이라도 삽을 든 사람만큼 근사하고 폼 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기념비적이고 자유롭게 자세를 바꾸며 차마 동상처럼 위풍다앙한 태도를 어디서 다시 보려고요. 아, 한 발로 삽을 밟고 화단에 서서 땀을 훔치며 "아이고." 소리를 낼 때면 알레고리를 형상화한 조각상 같다니까요. 그 모습 그대로 조심스럽게, 뿌리까지 온전히 캐내서 단상에 올려 두고 "승리의 노동"이라든가 "대지의 주인"이라는 팻말을 부텽 두면 딱입니다.'(p.121) 

 

실제로 정원을 가꿔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겠거니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카렐 차페크의 이 애정어린 익살 앞에서는 미소를 감추기 어렵다. (작가는 분명 개그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중간중간 낯선 식물의 이름들과 정원 일이 열거될 때면 집중력이 잠시 흐려지기도 하지만, 책을 못 읽을 정도는 전혀 아니다. 금방 또 어떤 보편적 섭리나 즐거운 익살로 눈과 마음을 붙잡아 준다. 내 짐작에 이 에세이는 민음사 쏜살문고 중에서도 유쾌하고 경쾌하기로는 최상위권에 포진할 책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기만 한 것은 또 아니다. '기다림'이라든가 '어쩔 수 없음'이라든가 '보이지 않는 분투' 같은, 인생에도 적용 가능한 섭리들이 중간중간 적소에 들어있다. 살면서 필요한 대부분의 배움은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겸허하게 인간의 무력함을 깨닫지만, 인내심이 지혜의 어머니라는 걸 또한 실감하는 것. 정원 가꾸는 사람이 배우는 삶의 섭리다. 

 

이게 정녕 거대한 고통 속에서 나온 에세이라니, 숙연해지는 마음

자주 미소를 머금으며 책을 다 읽었다. 그런데 뒤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조금 놀라고 말았다. 카렐 차페크가 1890년에 태어난 유럽인으로서 세계 대전을 겪은 세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카렐이 20대 청년 시기에 강직성 척추염을 진단받고 평생 만성 통증을 겪으며 불구와 다름없이 살았다는 것은 옮긴이의 말을 읽고 처음 알았다. 

 

아무리 의지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육체적인 통증, 그것도 사라지지 않을 걸 아는 극심한 통증 속에서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본인이라면 더없이 괴로울 것이고, 그 주변인들 역시 여러모로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유쾌하고 신나는 글을 쓸 수 있었다니, 정말 놀랍다. 이것 말고도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에세이도 썼다고 한다. 내 생명은 질병으로 위협받고, 사회와 이웃이 전쟁으로 사그라들던 시련의 때에 카렐 차페크는 계절과 흙과 식물, 그리고 동물에게서 생명의 가치를 발견했던 거 같다.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작가를 알고 보면 더 의미 있는, 작지만 푸릇푸릇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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