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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TV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소녀가 여자로 살 수 없는 땅

by 달리뷰 2023.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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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 힘쓴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에서 본 애니메이션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사실 짧고 괜찮은 애니메이션 뭐 없을까 싶은 마음에서 찾게 된 영화다. 2017년 작품이고 러닝타임은 94분, 제90회 미국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분 노미네이트 됐다.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을 다루지만, 캐나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회사가 공동제작했다. 원작은 소설인데, 원작 작가도 캐나다인 '데보라 앨리스'다. 작가가 실제로 1990년대에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인터뷰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즉,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아프가니스탄은 정말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생생한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파르바나의 모습(좌)과 파르바나가 남장을 한 모습(우) (사진출처: IMDB 해당 영화 갤러리)

원래 제목은 '브레드위너': 빵을 마련해야 하는 남장소녀 가장, 파르바나

한국판 제목과 달리 책과 영어판 제목은 '브레드위너'다. 빵을 얻는 자, 즉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을 의미한다. 아직 어린 소녀 파르바나의 가족은 아빠, 엄마, 언니, 오빠, 파르바나, 남동생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그러나 오빠는 죽고, 아빠는 이유 없이 감옥에 끌려간다. 집에 남은 이는 엄마, 언니, 어린 남동생, 그리고 파르바나. 아빠와 오빠의 일만으로도 가슴 무너질 텐데, 이 가족에게는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남자 없이는 외출할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현황 때문에, 먹을 것을 사러 나갈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다. 

 

(참고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에 여성들은 남자 없이 외출이 불가능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01년에 실제 그러했고, 바로 얼마 전인 2021년에도 여성 탄압이 심각했다고 한다. 외출 불가까진 아니어도, 여성의 교육이나 인권이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 듯.) 

 

남동생은 말도 못 하는 어린 아기고, 엄마나 언니는 이미 성인 여성이기에, 파르바나가 결심을 한다.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 되기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죽은 오빠의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빵을 사고, 아빠에게 배운 글을 읽거나 써주며 돈을 번다. 그 와중에 파르바나 자기와 똑같이 남장을 한 학교 친구 '샤우지아'를 만나고, 둘은 같이 심부름 같은 잡일도 하며 각자의 생계를 책임진다. 샤우지아는 용감하다는 뜻의 '델로와르', 파르바나는 불이라는 뜻의 '오테시'라는 남자 이름을 가지고. 

 

둘이 함께 힘들게 일을 마치고 걸어가는 길에, 지뢰가 있을까 봐 바닥에 앉지는 못하고 버려진 탱크 위를 올라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지뢰를 피해 탱크로 올라가 앉으려는 파르바나와 샤우지아 (사진출처: IMDB 해당 영화 갤러리)

 

이때 샤우지아가 바다 사진을 보여주는데, 둘은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 물이 이렇게 파랄 수 있다니, 달이 바다를 끌어당겼다 놓았다 한다니, 하면서 놀라워하는 둘. 언젠가는 바다에 가보고 싶어 한다.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땅에서 바다사진을 보는 파르바나와 샤우지아 (사진출처: 넷플릭스 해당 영화)

 

그리고 영화에서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파르바나가 어린 남동생에게 해주는 '술레이만 이야기'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역경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현실 속 파르바나와 이야기 속 술레이만은 동일하다. (술레이만은 파르바나의 죽은 오빠 이름이기도 하다) 연출도 꽤 재밌게 해서, 이야기가 유연하기도 하고, 막판에는 현실과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융합된다.

 

영화 말미,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폭발이 일어나며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 파르바나와 그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한다. 파르바나는 교도소로 아빠를 찾으러 갔고, 엄마의 부탁으로 온 남자 친척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결국 파르바나는 아빠를 찾고, 엄마는 그 친척을 물리치고 가족을 챙긴다. 감옥에서 만신창이가 된 아빠도 눈을 떠 파르바나를 알아본다. 어두운 밤, 파르바나는 아빠가 전에 가르쳐 준 이 땅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말을 되새긴다.

 

우린 사람이 가장 큰 보물인 땅이다

우리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제국들 사이에 있다

우린 힌두쿠시산맥 기슭 안 균열된 땅이다

북부 사막의 이글거리는 태양에 그슬린 땅

얼음 산봉우리와 대조되는 검은 돌무더기 토양

우린 오리아나, 고귀한 이들의 땅

목소리가 아닌 말의 가치를 높여라

꽃을 피우는 것은 비다

천둥이 아니다

-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 중 -

 

영화 배경은 2001년, 그러나 2021년에도 반복된 현실

남장소녀인 파르바나와 샤우지아는, 파르바나가 아빠를 찾으러 떠나면서 헤어진다. 그러면서 그 둘은 20년 후에 전에 말한 그 해변에서 만나자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2001년이니, 20년 후면 2021년이다. 영화 속 소녀들이 실제 인물이라면 이제 삼십 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정말 바다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고아 해변을 이야기하는 듯한데)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다. 2021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하면서,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했다. 이 때문에 사상자가 엄청났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나라를 떠나 위험하게 떠도는 처지가 됐다. 2022년 하반기 기사들을 봐도 아프가니스탄 현지 여성들의 열악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021년 8월 탈레반 재집권 후 약 1년 만에 일부 지역에서 여학생들의 등교가 재개됐지만, 또 곧 폐쇄됐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가 아주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내 답은 '그렇지는 않다'이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재미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뉴스를 통해서 대강 들어보긴 했지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고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의 현황을, 많은 이들이 좀 더 마음으로 봐주길 원하는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제작에는 유엔 친선대사로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다녀온 안젤리나 졸리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고 한다. 

총괄 프로듀서 안젤리나 졸리, 감독 노라 트메이, 성우 사라 초드리 (사진출처: IMDB 해당영화 갤러리)

 

한 개인이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멀게 느껴지던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좀 더 생생하게 느꼈다고 한들, 현실적으로 뭔가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몇 해 전에 실제 난민 아이들을 캐스팅해서 난민 현황을 절절하게 보여준 영화 <가버나움>의 감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의 감독 이야기로 리뷰를 맺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통하는 게 크다고 생각해서 인용한다.

 

'전 영화의 힘을 진심을 믿습니다. 영화란 단지 개봉하기 위해서 꿈꾸게 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유주기 위해 지금껏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린 더 이상 이 가버나움에서 싸우고 고통받는 아이들을 못 본 체하고 등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전 해결책을 모릅니다. (..중략..) 그럼에도 여러분이 꼭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세상 모든 불행의 근본에는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어린 시절이 있으니까요. 해결책을 찾기 위해 모두 함께 생각해 봤으면 해요.'

- 영화 <가버나움> 감독, 라딘 라바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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