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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및 TV

짧고 굵고 진한 교감, <나의 문어 선생님>

by 달리뷰 2023.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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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상태의 인간, 바다 깊숙이에서 평온을 찾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남아공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가 제작해 호평을 받고, 2021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작품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촬영하던 크레이그는 어느날 자신이 자연의 외부인이 된 느낌이 들고 번아웃이 온다. 일도 지치고, 아들 톰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도 없을 거 같다는 생각에 눌리던 크레이그.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촬영 중 만난 어느 사냥꾼들에게 영감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 대서양에 뛰어든다, 매일매일. 험한하고 시린 바다가 두렵기도 했지만 크레이그는 점차 바다에서 평온을 찾는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바다에서 문어 한 마리를 만나게 되고, 이 문어와 약 1년 간 함께하며 가까워진다. 이 다큐멘터리는 크레이그가 대서양에서 만난 문어와의 이야기다.

 

가까이서 오래 본 '문어': 신기하다! 놀랍다! 똑똑하다! 심지어 귀엽다!

문어의 첫인상은 '오잉? 이게 뭐지??'였다. 아래 사진처럼 조개로 덕지덕지 무장해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큐를 보는 나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크레이그도, 그리고 저 주변을 지나다니던 물고기들까지도 '대체 이게 뭔가' 싶어했다. 물고기들이 저 조개갑옷 둘레에서 갸우뚱 하는 거, 귀엽다.

 

한순간에 조개를 다 떨어내고 문어가 등장하는데, 처음에 문어는 크레이그를 경계한다. 그러나 이내 문어는 크레이그가 촬영을 위해 두고 간 카메라에도 관심을 보이고, 매일 나타나 안전하게 공존하는 크레이그에게 곁을 내주기 시작한다. 

 

낯설어 하며 숨다가 차츰차츰 굴 밖으로 나와 크레이그와 가까워지는 과정이, 마치 사람 사이의 관계와 꽤나 비슷해서 '문어가 똑똑하다더니 진짜 그런 것 같긴 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졌다 만나기도 하고, 조심스레 손을 잡기도 하는 등 '오~' 하며 감탄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많다. 크레이그와 문어 사이에 쌓이는 신뢰만큼 나 역시 이 문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되더라. 

 

그러나 비단 관계 때문은 아니고, 문어는 진짜 신비로운 존재였다! 일단 '피부가 울퉁불퉁했다가 매끈해지기도 하고', 머리에 뿔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카멜레온 저리가라 할 정도의 놀라운 보호색(색깔뿐 아니라 질감과 무늬까지도!)을 순식간에 구현하기도 한다. 쏜살같이 수영하기도 하는데, 다리 두 개로 걸어다니기도 하고! 돌멩이 흉내도 잘 내고, 물살에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해조류 흉내를 내기도 한다!!

 

(다큐 시작 20분 정도에 이 내용이 몇 분간 나오는데, 흥미롭다. 궁금하면 이 부분만이라도 보는 거 추천!!)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처럼, 명절 밥상에서만 보거나, 가끔 월드컵 경기 맞춘다는 얘기만 들었던 문어가, 내 눈에도 귀여워보이기 시작했다. 

 

먹고 먹히는 냉혹한 바다 생태계, 문어의 생존법은?

문어의 지능은 개, 고양이, 혹은 하급 영장류 수준이라 한다. 무척추 연체동물이라 연약한데, 천적이 사방에 많아서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운명이었기에 얻게된 지력인 듯하다. 

 

먹이를 사냥하는 것도 꽤나 지능적이고, 천적으로부터 피하는 전략은 더더욱 지능적이다. 물론 지력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서도. 

 

문어의 최대 천적인 '파자마상어'. 잘 피해서 굴 속으로 숨어들었건만 후각으로 먹이를 찾는 파자마상어가 굴 안으로 입을 들이밀어 문어의 다리를 하나 물어내고야 만다. 몸을 회전해가며 다리를 끊어내고 그것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사라진 상어. 문어는 그렇게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다. 

 

크레이그는 매일 문어의 굴로 찾아와 문어가 잘 있는지 살핀다. 문어는 아파서 입원한 환자처럼 하얗게 질려서는 꼼짝하지 않은 채로 굴에서 눈 감고 쉰다. 꽤나 오래. 하지만 생명의 놀라운 능력! 잘린 다리에서 작은 새 다리가 돋아난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그 다리는 예전 다리처럼 튼튼해지고, 문어는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만세!!

 

물고기와 장난치며 놀고, 크레이그와도 제법 가까워진 문어이지만,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상어는 또 문어를 노린다. 그리고 이번 공격에서 문어는 온갖 조개 껍데기를 빨판으로 들어올려 자기를 무장한다. 그렇다! 처음 만난 그 모습은 말랑한 육체를 조개로 가려 상어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상어는 조개 갑옷을 입은 문어를 물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지만 문어는 갑옷을 단단히 부착하고 공격을 버틴다. 크레이그가 잠시 숨 쉬러 올라갔다가 내려와보니 문어는 의외의 가장 안전한 장소, 상어의 등 위로 올라가 이번 전투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와우!

 

문어 '친구'도 '동료'도 아니고 문어 '선생님'인 이유

1시간 25분 정도의 길지 않은 러닝타임의 중후반부쯤, 재미있게 다큐를 보면서도 이런 궁금증이 들었다. 손 흔들어 인사도 하고 손을 맞잡기도 하니 친한 친구인 거 같은데, 왜 제목이 '나의 문어 친구'가 아니고 '나의 문어 선생님'일까?

이유는 후반부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날 보니 문어가 두 마리인데, 짝짓기를 한다. 크레이그의 친구였던 암컷 문어는 짝짓기 이후 굴 속에서 알을 품는다. 그리고는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간다. 자손을 남기고 자신은 죽는 시스템, 원래 문어의 삶과 죽음의 방식이라 한다. 크레이그도 자료 조사를 통해 이를 알고 있었기에 만감이 교차한다. 

 

새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죽게 된 문어는 물고기들의 밥, 최종적으로는 상어의 먹이가 된다. 크레이그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문어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지만 참아낸다. 

 

일년 정도 매일 얼굴을 보며, 가까워지고 서로 찾아다니고 장난도 치던 문어. 크레이그는 상실의 슬픔을 느낀다. 문어가 없는 문어굴에도 자주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문어와 함께한 시간 동안, 바다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번아웃을 극복하고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도 보낸 크레이그는 자신이 어느새 자연으로부터, 문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음을 깨닫는다. 

 

나의 문어 '선생님'인 이유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또 하나의 인연

문어가 죽은 후에도 아들과 바다를 찾는 크레이그. 어느 날 아주 작은 아기 문어를 발견한다. 아마도 크레이그의 문어 선생님이 남긴 베이비 문어가 아닐까. 

 

자연의 섭리에 따라 떠나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만, 계절이 늘 오고 가며, 다시 또 찾아오듯, 끝 이후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인간도 이 거대하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의 순환 속에서 다른 모든 동식물들과 함께 평화로이 공존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나의 문어 선생님, 혹은 나만의 자연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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